시설인이야기

어느 전기쟁이 이야기 par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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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showgoon 쪽지보내기 마이홈 보기     댓글 0건 조회 1,493회 등록일 -1-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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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일을 하며 틈나는대로 구인정보를 찾았다.

'00구 시설관리공단 전기직 모집'


당직을 서면서 새벽녘에 한 구직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6급 전기직 3명을 뽑는것이었다.


'6급이 뭐지?'

밤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공단 6급은 일반공무원과 3~4급정도

더해서 생각하면 된단다.


공무원....


많은 사람들이 원하듯 나도 한번 응시해 보고싶은 욕심이 들었다.

아침에 교대를 하고 퇴근전에 필요서류들을 총무과에 올라가 끊었다.

그날 9시 부터 3일간 접수였는데 서를를 준비하니

10시30분이 되가고 있었다.


부랴부랴 접수처로 갔다.

전기직이외에도 채용분야가 많아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접수에도 그렇게 시간이 많이 들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있는 여직원이 대충 필요서류를 훝어보고 접수증을 주었다.

접수번호로 나중에 발표가 된다고 했다.

뿌듯한 마음에 접수증을 보니

헉!


300번대다!

그때가 11시가 채 안됬을 시간인데 기술직 나군 300번대 번호가 찍혔다.

그 장소에 함께 있던 수많은 사람중에

남자들은 다 전기기사로 보인다.

모두 나보다 다 나은 사람들 처럼 느껴진다.

'자격증이라곤 전기기사와 가스사용시설이 다인데...'

그간 자격증 더 안따놓은 후회가 막 밀려오며

더 노력해야 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낙방이었다.


이젠 당직때 자격증 공부를 매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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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이사님은 저녁마다 소주심부름을 시키시고

술자리 말동무로 밤새 주사를 부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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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지방시 00구 시설관리공단 전기직 공고가 올라왔다.

마찬가지로 6급이었다.


그전보다 더 준비된 것은 없었지만

응시자격은 되서 넣어보기로 했다.

제길 방문 접수란다.



지하철은 몇번 갈아타고 간 공단 사무실은 한산했다.

그날이 접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구직공고 보고 왔습니다."


해당 사무실에 갔는데 담당은 자리를 비웠단다.

접수기간중에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다니.....


커피를 한잔 타주며 잠시 기다리란다.

접수하러 온사람한테 커피대접을 해준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잠시후 담당자가 오고 탕비실로 날 데려간다.

방금 커피를 마셨는데 녹차를 한잔 더준다.


"서류좀 볼수 있을까요?"


서류를 쭈욱 훝어보더니 경력증명서가 없냐고 묻는다.

협회에서 인증하는 기술인 수첩의 경력란 복사본을 드리며

이것으로 대체가능하지 않냐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접수를 마치고 접수증을 받았다.

헉!!!!


3번이다. 1명 뽑는데 접수 마지막날 오전에 내가 3번이었다.

은근히 기대가 됬다.


접수를 마치고 공단앞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누가 뛰어온다. 접수했던 직원이었다.


기술인수첩말고 각 회사의 경력증명서를 띄어다 줄수 있냐고 물어본다.

여기가 峙堧繭 오늘은 좀 어렵겠다고 했더니

눈빛이 간절하다....


놓치기 아까운 사람이라나 뭐라나,

지금 생각하면 헛소리라고 느껴지는데

그날의 날 벌써 감동해 버렸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전회사로 가서 경력증명서를 띄고

다시 병원으로 가서 경력증명서를 띄고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공단에 서류를 내니 오후 5시가 넘었다.

배는 고팠지만 참을만 했다.

왜?


"나는 공단 공무원이니까!!!"


저사람이 이렇게 날 필요로 할 정도면 난 이미 붙은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발표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이사님 술심부름도 이제 몇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발표일이다.


발표시간 10시 전에 공단홈페이지를 계속 들락날락 했다.

드디어 10시.


명단에 나는 없었다. 발표된 번호는 20번대이다.

합격자 번호와 함께 그날의 사건은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았다.


공무원 사회를 조금 아시는 형님은 공고에 1명 뽑는다면

서류때 몇배수, 면접때 몇배수 이렇게 인원에 대한 기준이 있고

그걸 맞춰야 공고가 성립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그날의 미스테리를 조금이나마 설명하는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날의 난 들러리 서류를 만들려 그렇게 뛰어다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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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사 OP였다.

오퍼레이터를 OP라고 부르는데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까지 하는게 내일이었다.

난 골프팀이라 4명단위로 상품을 만들고 또 비지니스를 겸하는 손님들이 많다보니

조율을 위해 골프관련 사람들을 종종 만났었다.


골프장

그래 골프장으로 가보자

내가 가진 재주를 두개라 치면 하나는 전기요

하나는 골프상품 오퍼레이터 였다.

골프장으로 가면 그 두개중 하나인 골프OP 재능도 써먹을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중에 그건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이었으나

그래도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파주, 여주, 안성 등 수도권 근처에 골프장이 꽤 많았다.

먼저 한국데 이력서를 넣으니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신설 퍼블릭 골프장이었는데 기숙사 제공은 안된다 했다.

연봉은 2600 주겠다는 얘기에 오케이를 했다.

외곽도로를 타고오면 생각보다 가까워서 기름값빼면 비슷할꺼 같았고

그렇게 골프장 경력쌓아 더큰데로 갈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회장이 최종결정을 한다하여 따라가보니

왠 산적이 회전의자에 앉아있다.


이력서와 날 교대로 위아래로 눈동자만 움직여가며 째려보는데

기분이 묘하게 나빳다.


결과는 안된단다.

근 두달동안 세군데서 뺀찌를 먹으니

이게 내 한계인가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한번만 더 넣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한국데 지방골프장에 이력서를 넣었다.


또 면접보잔다.

이 새끼들 교통비도 안주면서 서울사는사람 자꾸 불러 재낀다.

집 차를 끌고 찾아갔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갈때마다 양복을 쫘악 빼입고 간다.


3번 낙방이 된후라 겁날것도 없었다.

자를테면 잘라라 라는 심정으로 당당히 면접을 봤다.

"연봉 2800 은 받아야 겠으며 기숙사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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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했다.

훗날 들은 얘기로

내공이 올랐다해도 혼자익힌 형편없는 내 실무능력을 보고

면접땐 엄청 실력 좋은 사람으로 보셨다고 우스개로 말씀하셨다.


세게 나간것이 오히려 주효했던 모양이다.

인간사 세옹지마라는 표현이 딱 맞다.


2년 좀 안된 병원생활을 정리하고 내려간 첫날

내방을 배정받았다.

핸드폰으로 한참 방사진을 찍었다.

침대, TV, 개인화장실, 가스렌지, 에어콘, 냉장고, 인터넷....



수전실에서 자던 내가 이런데서 살게되다니

감격적이었다.

산속이라 조용하고 공기가 너무 맑았다.

"여기서 조용히 공부해서 기술사까지 따야지..."

이런 다짐을 하고 자리에 누웠다.


골프장에서의 꿈같은 미래를 그리면서.....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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