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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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녀석은 20대후반에 전기기사와 공사기사와 더불어 소방전기기사를 취득했다.
그 당시 그 녀석은 전공이 경영학과였는데, 군시설 통신병으로 있을때 자기 적성이 경영학보다는
전기일이 맞더란 것이다.
20대후반에 덜컥 결혼하고 아기도 생겼는데, 하필 외환위기라 갈 곳이 없더란다.
8평짜리 원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상태에서 전기기사자격증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갔으니
얼마나 궁핍했겠는가.. 그런 친구를 위해 어느날 고기집에서 친구가족을 초대해 포식을 시켜주었더니
친구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더라. 그때는 몰랐다. 내가 이 길로 갈 줄은..
나는 인문학을 전공했고, 평생 소설이나 책이나 쓰면서 가난하지만 소소한 삶을 살기를 희망했다.
그런 내가 이 길로 들어서서 이 나이가 되어 버리다니,
2년인가를 고생해서 그 친구는 쌍기사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자, 갈 길이 많아졌다.
20대후반 30초반에 전기쌍기사 자격증이면 어디든 어서옵쇼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1-2년 경력까지 있으면
서류는 당연 통과다. 그 때부터 친구와 나의 삶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일반회사에 들어가도 선임급으로 들어갔고, 한국전력 , 전기안전공사업체 같은 이름만 대도 빵빵한
공기업에 다녔다. 물론 계약직이었지만 그 경력은 어디에서도 통했다. 그러다 , 한국철도공玲【 채용공고
가 났고 보란듯이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물론 두 자격증은 이때도 위력을 발휘했다.
나는 어떠했냐? 30초반에 컴퓨터a/s사업을 했다. 사업이라면 좀 뭐하지만 일에 치여 살다시피했다.
인문학도가 왜 컴퓨터사업을 하게 되었는지 아이러니지만 어쨋든 그당시 또다른 친구녀석이 함께 해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돈은 제법 벌렸다. 문제는 불규칙한 식생활과 과도한 스트레스와 친구와의 불화로
결국 사업을 접고 차린게 도서대여점이었다. 피시방을 차리란 걸 겁이나서 접어두고 그냥 무난하고 무던한
도서대여점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소자본으로 할 수 있다는 그냥 막연한 기대감으로.. 한 삼년했다.
그리고 보란듯이 망해 버렸다. 그 때 발을 들여놓은 것이 이 시설직종이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리고 한동안
은 주택관리사랑 공인중계사공부를 했다. 별 필요도 못느끼면서 하다보니 시험 볼 때마다 맨날 낙방이고,
그러다 잠시 시설일을 떠나고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소중한 인생의 30초중반에.. 그러다 그 해
인가 그냥 전기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근데 그 해 시험은 이제 전기공사 한개만 남아 있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전기공사시험을 봤다. 그냥 동영상강의 한 달을 죽어라 봤다. 뭔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한 달 보니까
대충 감이 오더라. 한 두달 한 듯 싶다. 눈뜨고 먹고 싸는 거 제외하면 항상 전기공부만 한 것 같다.
그러자, 필기시험을 가뿐히 통과했다. 이제 남은 건 실기.. 한 달 했다. 물론 먹고 자는거 제외하고 맨날 전기
실기공부만 했다. 시험보니 그 합격이었다. 한 3개월해서 자격증을 딴 것 같다. 그 후부터 줄곧 해마다 자격
증을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원서를 내보니 이제 나이제한에 걸려버렸다. 공장공무과를 가볼려고 했는데,
나이제한에 걸려버려서 갈 수없게 되었고, 면접을 보니 담당자가 자기랑 동갑이네 나이가 좀 많네하면서 결국
불발로 몇 번 안되니 이제 접어 버렸다. 그러다, 국제결혼을 하게 되었고 슬하에 딸내미도 생기고 하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여의치 않게 되어 버렸다. 필기는 되는데, 늘상 실기에서 미역국을 먹기 시작했다.
살다보니, 전기쌍기사에 소방전기에 팔자에도 없는 보일러도 따서 보일러기관장도 한 2-3년하고 나니 어디가도
실력없다는 소리는 듣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도 40이다. 나이가 30문턱을 넘어 40이 되고 보니, 이제 갈 길은
점점 좁아지고, 내선전기기술사나 소방관리사를 딴다고 해도 전망없기는 매 한 가지란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
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문제는 나이, 성별, 학벌과 같은 보이지않는 차별과 벽에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나는 새로운 길을 다시 찾게 되었다. 어차피 첫 단추가 문제였고 중간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앞 동 형님은 생산직으로 18년 근속하다보니 현재 연봉이 7천정도 한다. 물론 정규직이다. 정년은 55세까지..
시청친구의 소개로 청소원으로 들어간 길 건너 형님은 연봉 4천에 정년 65세란다. 물론 수당이나 보너스는 별도
로.. 그 형님들 앞에 서면 나는 초라해지다못해 쪼그라 든다. 아.. 단추를 잘못 꽂았구나.. 꽂았구나.. 자책해
봐도 어쩔 수 없는 내 인생이다.
왠지 불안해진다. 자격증이 아무리 많고 실력이 좋아 봐야 시설은 항시 을의 신분이고 비정규직에 늘 고용불안
에 시달리지 않는가..
그래서, 요새는 아내가 일하는 제조업회사에 고개를 기웃거린다. 늦었지만 그 쪽 일을 좀 배울려고, 하다못해
나도 조그만 부품공장이나 차려볼까하고, 아.. 누구 말마따나 정말 이건 내 길이 아닌가 싶다..
농사꾼도 부럽고 생산직으로 일하는 정규직들이 부럽고... 아.. 정말 왜 이럴까.......
그 당시 그 녀석은 전공이 경영학과였는데, 군시설 통신병으로 있을때 자기 적성이 경영학보다는
전기일이 맞더란 것이다.
20대후반에 덜컥 결혼하고 아기도 생겼는데, 하필 외환위기라 갈 곳이 없더란다.
8평짜리 원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상태에서 전기기사자격증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갔으니
얼마나 궁핍했겠는가.. 그런 친구를 위해 어느날 고기집에서 친구가족을 초대해 포식을 시켜주었더니
친구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더라. 그때는 몰랐다. 내가 이 길로 갈 줄은..
나는 인문학을 전공했고, 평생 소설이나 책이나 쓰면서 가난하지만 소소한 삶을 살기를 희망했다.
그런 내가 이 길로 들어서서 이 나이가 되어 버리다니,
2년인가를 고생해서 그 친구는 쌍기사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자, 갈 길이 많아졌다.
20대후반 30초반에 전기쌍기사 자격증이면 어디든 어서옵쇼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1-2년 경력까지 있으면
서류는 당연 통과다. 그 때부터 친구와 나의 삶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일반회사에 들어가도 선임급으로 들어갔고, 한국전력 , 전기안전공사업체 같은 이름만 대도 빵빵한
공기업에 다녔다. 물론 계약직이었지만 그 경력은 어디에서도 통했다. 그러다 , 한국철도공玲【 채용공고
가 났고 보란듯이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물론 두 자격증은 이때도 위력을 발휘했다.
나는 어떠했냐? 30초반에 컴퓨터a/s사업을 했다. 사업이라면 좀 뭐하지만 일에 치여 살다시피했다.
인문학도가 왜 컴퓨터사업을 하게 되었는지 아이러니지만 어쨋든 그당시 또다른 친구녀석이 함께 해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돈은 제법 벌렸다. 문제는 불규칙한 식생활과 과도한 스트레스와 친구와의 불화로
결국 사업을 접고 차린게 도서대여점이었다. 피시방을 차리란 걸 겁이나서 접어두고 그냥 무난하고 무던한
도서대여점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소자본으로 할 수 있다는 그냥 막연한 기대감으로.. 한 삼년했다.
그리고 보란듯이 망해 버렸다. 그 때 발을 들여놓은 것이 이 시설직종이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리고 한동안
은 주택관리사랑 공인중계사공부를 했다. 별 필요도 못느끼면서 하다보니 시험 볼 때마다 맨날 낙방이고,
그러다 잠시 시설일을 떠나고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소중한 인생의 30초중반에.. 그러다 그 해
인가 그냥 전기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근데 그 해 시험은 이제 전기공사 한개만 남아 있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전기공사시험을 봤다. 그냥 동영상강의 한 달을 죽어라 봤다. 뭔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한 달 보니까
대충 감이 오더라. 한 두달 한 듯 싶다. 눈뜨고 먹고 싸는 거 제외하면 항상 전기공부만 한 것 같다.
그러자, 필기시험을 가뿐히 통과했다. 이제 남은 건 실기.. 한 달 했다. 물론 먹고 자는거 제외하고 맨날 전기
실기공부만 했다. 시험보니 그 합격이었다. 한 3개월해서 자격증을 딴 것 같다. 그 후부터 줄곧 해마다 자격
증을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원서를 내보니 이제 나이제한에 걸려버렸다. 공장공무과를 가볼려고 했는데,
나이제한에 걸려버려서 갈 수없게 되었고, 면접을 보니 담당자가 자기랑 동갑이네 나이가 좀 많네하면서 결국
불발로 몇 번 안되니 이제 접어 버렸다. 그러다, 국제결혼을 하게 되었고 슬하에 딸내미도 생기고 하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여의치 않게 되어 버렸다. 필기는 되는데, 늘상 실기에서 미역국을 먹기 시작했다.
살다보니, 전기쌍기사에 소방전기에 팔자에도 없는 보일러도 따서 보일러기관장도 한 2-3년하고 나니 어디가도
실력없다는 소리는 듣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도 40이다. 나이가 30문턱을 넘어 40이 되고 보니, 이제 갈 길은
점점 좁아지고, 내선전기기술사나 소방관리사를 딴다고 해도 전망없기는 매 한 가지란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
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문제는 나이, 성별, 학벌과 같은 보이지않는 차별과 벽에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나는 새로운 길을 다시 찾게 되었다. 어차피 첫 단추가 문제였고 중간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앞 동 형님은 생산직으로 18년 근속하다보니 현재 연봉이 7천정도 한다. 물론 정규직이다. 정년은 55세까지..
시청친구의 소개로 청소원으로 들어간 길 건너 형님은 연봉 4천에 정년 65세란다. 물론 수당이나 보너스는 별도
로.. 그 형님들 앞에 서면 나는 초라해지다못해 쪼그라 든다. 아.. 단추를 잘못 꽂았구나.. 꽂았구나.. 자책해
봐도 어쩔 수 없는 내 인생이다.
왠지 불안해진다. 자격증이 아무리 많고 실력이 좋아 봐야 시설은 항시 을의 신분이고 비정규직에 늘 고용불안
에 시달리지 않는가..
그래서, 요새는 아내가 일하는 제조업회사에 고개를 기웃거린다. 늦었지만 그 쪽 일을 좀 배울려고, 하다못해
나도 조그만 부품공장이나 차려볼까하고, 아.. 누구 말마따나 정말 이건 내 길이 아닌가 싶다..
농사꾼도 부럽고 생산직으로 일하는 정규직들이 부럽고... 아.. 정말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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