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인이야기

2013 굴욕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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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ngel1111     댓글 0건 조회 1,281회 등록일 13-12-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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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엔젤에겐 그 어느해보다 굴욕의 순간이었습니다

올해는 진짜 벙커 탈출할려고 파닥파닥 발버둥 쳐봤는데

개굴욕만 당했네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봅니다

올해 초였죠..엊그제같네요

오피스텔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자의반타의반으로

때려 치고 이를 악물고 다짐을 했었죠

내 다시 벙커에 기어 들어가면 혀깨물고 죽겠다고요

실업급여 타먹으면서 한 오개월은 편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그러기엔 제 인생에 여유가 없더군요

하루빨리 시궁창이든 천국이든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게 화근이었죠

엔젤이 너무 성급했었습니다

KTX물류관리부 비정규직으로 들어 갔죠

예전에 한차례 글을 남긴것 같습니다

물류관리부라고 해봐야 하는 일은 단순했습니다

특실차량이 열차에 세개정도 되는데 거기에

생수병을 가득 채우면 되는 진짜 단순업무였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힘들더군요

단순 업무라도 손에 익지 않으니 서너살 어린 사수에게

욕도 많이 먹었드랬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일단 벙커에 있진 않았었고 스스로 벙커를 탈출할려는

제 자신을 보았으니까요

한두달 지나니 업무도 익숙해지고 일초에 세병을 자판기에

쑤셔 박을 정도로 손놀림도 제법 빨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우리를 관리하는 갑측이 있었습니다

더 웃긴건 우리를 관리하는 갑측도 오리지날 갑측이 아니라

진짜 오리지날에게 관리를 또 받고 있었고

또 더 웃긴건 우리들의 오야지가 대구백화점이라는 거였습니다

대구백화점이 용역사도 운영하는 말도 안되는 시스템이었죠

작업복에는 대구백화점이라고 써있고 나는 KTX라는 틀 안애서

일을 하고 있고 제가 무슨 카멜레온도 아니고..황당했습니다

물론 기분도 드러웠죠

진짜 자본주의국가에서 제일 먼저 없어져야할 것이 용역

이구나 곱씹으며 이를 갈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일을 할려고 했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는 당분간 최소 몇년간은 벙커일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신물이 낫거든요

그러나 사건은 항상 그렇듯 평화로운 순간에 찾아 오더군요

그날도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드랬는데 갑측 사무실에서

저를 올라 오라고 하더군요

아침 출근하자마자 바로 갑측 사무실로 올라 갔습니다

근데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직책은 팀장이라는 놈이 저에게

오라고 손가락질을 하더군요

이건 완전히 조카뻘인데..순간 올컥 하더군요

이놈이 하는 말이 내 책상위에 먼지가 많으니 물걸레로

먼지 하나 없이 닦으리고 하더군요

그 상태에서 그놈은 아침부터 스포츠토토 베팅하고 있더군요

아~~~거기서 완전히 엔젤은 넋이 나갔습니다

넋이 나간 상태로 그 어린 조카같은 놈의 책상을 깔끔히

닦아 줬습니다[이건뭐지 이건뭐지하면서요]

내가 상고를 갓 졸업하고 취업을 한 여고생이었다면

당연히 군말없이 기분 안나쁘게 할수 있는 일이었겠지만

나이 사십이 훌적 넘은 상태에서 그 어린 놈의 책상을

닦았던 저는 참담하다는 표현을 넘어 그 즉시 접싯물에

코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그날 일을 끝마치고 이슬이 댓병 조지고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끝이었죠

석달간 그래도 열심히 일했었는데

그런식으로 끝날지 저도 전혀 상상 못했습니다

이렇듯 나이 먹어서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는건

개모험이란걸 절실하게 느끼고 지금 현재

벙커에 있는거죠

그나마 벙커 테두리 안에서는 가끔 사람 취급도 받고

최소한 조카뻘 되는 어린 놈이 자기 책상좀 닦으라고

시키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게 석달간 좃뺑이를 치고 다시 벙커로 돌아 오니

변전실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음악 소리처럼 들리고

기계실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리고

석면 먼지 날리는 썩은 공기도 달게 느껴지더군요

진상 입주민이 엔젤에게 진상 부리는것도

저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러시는구나 반갑구요

엔젤도 천상 시설인인가 봅니다

이제는 벙커 탈출할려고 시도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최대한 벙커에서 오래 견뎌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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