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인이야기

운초 김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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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임다솜 쪽지보내기 마이홈 보기     댓글 0건 조회 319회 등록일 14-02-08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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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3대 여류 시기중 한 사람 운초 김부용...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은 황진이, 허난설헌, 이매창이다. 조선의 3대시기(三大詩妓·시에 능한 기생)로는 부안의 이매창(1573~1610), 개성의 황진이(1506~1544 추정), 그리고 허난설헌 대신 평안남도 성천의 김부용(1820-1869)을 말한다. 이매창과 황진이는 각각 고향인 부안과 개성에 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부용은 그 묘를 알 수 없다가 1975년 천안향토사계가 천안 광덕의 한 이름없는 묘가 그의 것이라고 하면서 현재까지 매년 추모제를 지내오고 있다.

작년에 잠시 들린 광덕산에서 길을 못찾아 엄청 헤메다가 산기슭의 샛길을 따라가다가 만난 묘소.

시비 하나에 어디서나 봄짓한 소담하고 그저그런 묘에 떡하니 운초 김부용지묘란 묘비가 하나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냥, 뭐 그런 여류시인이 있었단 소리는 들었지만, 길을 헤메다가 우연찮게 만난 묘소는 생각밖으로 초라하고 별 볼일

없었다.

그 후에 깜빡 잊고 있다가 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운초 김부용.

10살에 부모를 여의고 관기가 되어 뭇벼슬아치들의 술시중을 들던 기녀로 살던 여인. 뛰어나 자태와 시문으로

명성이 자자하자 마침 그 곳 사또의 마음에 들어 평양감사로 있던 권문세도가의 눈에 들어 첩실이 된 여인

세도가의 당시 나이는 자그만치 77세 .. 기녀의 나이는 꽃피는 19살 이팔청춘..

김이양대감이라고.. 이 양반 고사가 옛날 도덕교과서에 나왔던 그 분이란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젊은시절 너무 가난해서 어느날 도둑이 들었는데 솥단지에 밥이 한톨도 없더란다. 그래서 도둑이 도둑질은 커녕

솥단지에 쌀이랑 돈을 넣어놓고 갔다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 이 양반이 과거에 급제하여 말그대로 출세가도를

달려 무려 97세의 나이에 운명했다니.. 천수를 누렸다고 할까..

어쨋든 평양감사시절 운초를 끼고 시문과 풍류로 낙을 누리고 한양으로 가서는 그녀를 첩으로 맞이하는데,

13년 운우지정을 나누고 사별하니, 그 슬픔을 시로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니 '부용집' 되시겄다.

59살에 죽어 양반의 묘소 가까운데 장사되니.. 참 기구한 인생이라고 해야하나 그나마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해야하나...

오늘날 태어났다면 연예인으로 한 세상 이름을 날리고 온갖 부귀영화와 즐거움을 누리고 살았을텐데.

원하던 원치않던 부모가 죽어 할 수 없이 관기로 인생이 결정나 버렸으니, 기구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나 시설일 하는 사람들 모두 어쩜 운초의 인생과 별반 다를게 없는 듯 싶다.

벙커를 원해서 온 건 절대 아니었지. 입에 풀칠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놓은게 지금까지

이렇게 흘러 온 것이고 그 생활들이 모여서 나의 인생이 되어 버린 것이지.

운초는 시문이라도 뛰어나고 뭍 사내의 사랑이라도 받아왔지만, 나를 반긴건 무시와 울분과 한심함과

분노... 열등감.... 아... 뒤돌아 보니 부끄럽군...

권문세도가라도 만나서 그 기구한 인생 행복이라도 했는데, 내 인생 앞으로도 벙커인생이라면

좀 슬퍼지는군... 그래도 죽으면 잠들 묘비와 무덤은 있네.

화산리의 가족납골당에 다녀오면서 기구하지만 불꽃처럼 피었다 후세에 잊혀지지않고 여러 뜻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길이길이 남아 있는 운초 김부용 누님을 기리며...

쓸쓸한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을 비워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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